故人이 된 축구인

'한일전의 사나이' 유상철, 그가 남긴 발자취

유상철은 대한민국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였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였으며,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올라운더형 선수로 평가받는다. K리그와 J리그를 오가며 선수 생활을 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4강 진출에 기여하며 대회 올스타로 선정되었다.


2013년에는 K리그 출범 30주년을 기념해 선정된 "K리그 30주년 레전드 베스트 XI"에도 이름을 올렸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 출신으로 응암초, 경신중, 경신고, 건국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에 성씨가 '유'씨인 점에 착안해 '유비'라는 별명이 붙었고, 유독 한일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 '한일전의 사나이'로도 불렸다.


울산 현대에서는 두 차례 K리그 우승을 경험했고, 공격수부터 수비수까지 모든 포지션에서 베스트 11에 선정되며 김현석, 이천수 못지않은 울산의 레전드로 자리매김했다. 이때 붙은 별명 '멀티 플레이어'는 이후 국가대표팀에서도 이어졌다.


1990년대 전반에 걸쳐 대한민국 축구에 큰 영향을 준 선수 중 하나로, 최전방부터 최후방까지 모두 소화하는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왼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였음에도 훈련과 노력으로 이를 극복했으며,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에서는 투혼의 헤딩 동점골을, 2002년 한일 월드컵 폴란드전에서는 강력한 오른발 슈팅골을 터뜨리며 대한민국의 월드컵 첫 승과 4강 신화에 힘을 보탰다.


이후 유럽 진출을 시도했으나 이루지 못했고, 2006년 울산 현대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2009년 춘천기계공고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고, 2011년 7월 왕선재의 후임으로 대전 시티즌 감독에 부임하며 첫 프로 감독직을 수행했으나 2012시즌 후 재계약에는 실패했다. 2014년에는 울산대학교 축구부 감독을 맡아 2014·2015년 대학 축구대회 2년 연속 준우승, 2015년 전국체육대회 준우승, 2017년 추계대학축구연맹전 준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유비 유소년 클럽을 운영하기도 했다


2017년 12월 전남 드래곤즈 감독으로 정식 임명되며 5년 만에 K리그로 복귀했지만, 성적 부진으로 2018년 8월 사퇴했다. 2019년 5월에는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했으나, 그해 말 췌장암 4기 판정을 받고 시즌 후 사임했다. 13차례에 가까운 항암 치료 끝에 상태가 호전되어 인천 유나이티드 복귀 의사를 밝히기도 했으나 주위의 만류로 무산되었다. 이후에는 예능과 다큐멘터리에 꾸준히 출연하며 축구 팬들과 소통을 이어갔다.

투병 끝에 2021년 6월 7일, 4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왼쪽 눈의 장애를 극복하고 그라운드를 누비던 그의 투혼과, 마지막까지 팬들과 소통하려 했던 모습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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